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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이적 도미노 효과? B·C등급 타임이 온다

해태(현 KIA) 타이거즈 투수 이강철(현 KT 위즈 감독)은 1999년 11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계약 조건은 3년 총액 8억원. KBO리그 역대 최초의 FA 이적 사례였다. 한 달 뒤인 12월에는 LG 트윈스 출신의 FA 포수 김동수가 다시 삼성과 3년 총액 8억원에 사인했다. 새로 도입한 FA 제도가 서서히 프로야구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 후 지난해까지 총 45명의 선수가 FA 자격으로 이적에 성공했다. 특히 FA 몸값 광풍이 일던 2016년과 2017년엔 2년 연속 7명이 팀을 옮겨 역대 최다 이적 기록을 썼다. 2018년에도 선수 4명이 좋은 조건으로 새 둥지를 찾았다. 활발하던 이적 시장이 주춤해진 건, KBO리그에 '몸값 거품 경계령'이 떨어진 2019년부터다. 대부분의 구단이 지갑을 닫았고, 이적 선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해 팀을 옮긴 FA 선수는 '역대급' 최대어였던 포수 양의지(두산 베어스→NC 다이노스)가 유일했다. 2020년 역시 내야수 안치홍만 KIA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소속팀을 옮겼다. 지난 시즌에는 이적 선수가 다시 3명으로 늘었지만, 한 팀(두산)에서 FA 7명이 우르르 쏟아진 영향을 크게 받았다. 두산이 내부 FA 전원을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스토브리그에는 내야수 오재일(삼성)과 최주환(SSG 랜더스)이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투수 이용찬은 시즌 도중 NC와 계약해 조금 늦은 스타트를 끊었다.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벌써 삼성 출신 외야수 박해민과 두산 출신 FA 외야수 박건우가 지난 14일 각각 LG와 NC로 이적했다. NC 간판타자였던 FA 외야수 나성범도 고향팀 KIA와 초대형 계약에 합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NC가 박건우 영입을 공식 발표하면서 이 가설에 더 무게가 실렸다. 이뿐만 아니다. 원 소속구단 잔류가 유력해 보였던 투수 양현종(전 KIA)과 외야수 김현수(전 LG) 역시 협상 과정의 잡음이 외부로 흘러나오고 있다. "FA 시장에 '무조건'은 없다"는 진리를 재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3년간의 시장 상황과 달리, 예상보다 더 많은 이합집산이 벌어질 조짐이다. 동시에 많은 구단이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A등급 선수들에 가려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던 B·C등급 FA 선수들에게도 서서히 협상 테이블이 열리는 모양새다. 국가대표 출신인 내야수 박병호와 황재균, 외야수 손아섭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35세 이상(박병호)이거나 FA 재자격(황재균·손아섭)을 얻어 A등급을 피했다. '에이징 커브'나 높은 보상금 등은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마음 급한 구단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새로운 전력보강 카드를 찾고 있다. 요동치는 FA 시장이 만들어낸 '도미노 효과'다. 배영은 기자 2021.12.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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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꿈 이루나…MLB 사무국, KBO에 신분조회 요청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KBO에 투수 양현종(33)의 신분조회를 요청했다. KBO는 8일 "MLB 사무국으로부터 지난 5일 양현종 신분조회 요청을 받았다. KBO는 양현종이 자유계약선수(FA) 신분임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신분 조회는 해외 구단이 한국 선수의 계약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공식 절차다.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양현종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 구단이 나타났다는 확실한 신호다. 양현종은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떠난 KBO리그에서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투수다. 개인 통산 147승을 올려 구단(전신 해태 타이거즈 포함) 역대 최다승 2위에 올라 있다. 그런 양현종의 현재 목표는 오직 'MLB'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은 뒤 줄곧 MLB 진출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 지난달 중순 원소속구단 KIA 타이거즈와 잔류 협상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국내 스프링캠프 시작을 앞두고 KIA에 "MLB 도전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최종 전달했다. KIA에 남으면 거액의 장기 계약이 가능했던 양현종은 이제 '마이너리그 거부권'이라는 필수 조건까지 철회하면서 안정보다 도전을 선택했다. 국가대표 에이스의 '드림 로드'에 서서히 끝이 보인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2021.02.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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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열흘만 더”…KIA “에이스 뜻 존중”

국가대표 에이스는 오랜 꿈을 극적으로 이룰 수 있을까. 그 답은 열흘 안에 나온다. 프로야구 최고 왼손 투수 양현종(33)이 이달 말까지 메이저리그(MLB) 도전을 이어가기로 했다. 원소속구단 KIA 타이거즈와의 잔류 계약을 일단 보류했다. 양현종 측은 20일 조계현 KIA 단장에게 “MLB 진출 꿈을 접기에는 아직 아쉬움이 남는다. 열흘만 더 미국 구단 이야기를 들어본 뒤, 30일까지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조 단장은 “MLB 마운드에 꼭 서겠다는 양현종의 의지가 무척 강하다. 나 역시 투수 출신으로서 선수의 꿈을 이해한다. 우리 팀 에이스의 의사를 존중해 열흘 더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양현종은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떠난 KBO리그에서 명실상부한 최고 국내파 투수다. 무엇보다 그는 KIA가 자랑하는 ‘리빙 레전드’다. 개인 통산 147승으로, 구단(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포함) 역대 최다승 2위다. 지난해 11승을 추가하면서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146승)을 넘어섰다. 이강철 KT 위즈 감독의 구단 최다승(150승) 기록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양현종의 현재 목표는 오직 ‘MLB’다. 2019시즌을 마친 뒤 일찌감치 “1년만 더 KIA에서 뛰고 MLB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두 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고, 곧바로 빅리그 문을 두드렸다.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악재가 또 한 번 악영향을 미쳤다. 미국 FA 시장이 전체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FA인 양현종은 포스팅을 거쳤던 선수와 달리 정해진 협상 기한이 없다. 다른 해였다면 더 자유롭고 유리한 상황이었겠지만, 이번 스토브리그는 달랐다. ‘외부 FA 영입’이 많은 구단의 의사 결정 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양현종의 MLB 도전 역시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세부 조건 합의도 쉽지 않았다. 양현종은 당초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과 ‘선발로 뛸 수 있는 팀’을 필수 조건으로 내걸고 FA 시장에 나왔다. 그에게 관심을 보인 미국 구단은 30대 중반의 나이와 지난해 성적 등을 이유로 ‘스플릿 계약’(MLB 연봉과 마이너리그 연봉에 차등을 두는 계약)을 제의했다. 미국행 자체가 모험인 양현종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고민 끝에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더는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꿈의 실현이 절실한 양현종은 이제 ‘40인 로스터 보장’을 계약의 마지노선으로 여기고 있다. 국내 구단의 스프링캠프는 다음 달 1일 시작한다. 양현종 결정을 기다리던 KIA는 14일 처음으로 잔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상 테이블을 준비했다. 이 자리에서 양현종 측은 “20일까지는 MLB 구단 제안을 기다려보겠다”고 했다. 약속한 기한 하루 전인 19일, KIA는 양현종 측을 다시 만나 6시간 30분에 걸친 마라톤협상을 했다. 이 자리에서 계약 기간 4년을 포함한 세부 내용을 거의 합의했다. 양현종이 ‘한국에 남는다’는 결심만 굳히면, 언제든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그러나 그는 결정해야 하는 순간, 한 번 더 “열흘만 시간을 달라”고 어렵게 양해를 구했다. 이번 스토브리그가 MLB 문을 열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서다. 그를 아끼는 KIA는 이번에도 에이스 뜻을 따르기로 했다. 양현종의 ‘디데이’는 그렇게 열흘 뒤로 미뤄졌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2021.01.2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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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돋보기] 20년 만에 등급제 도입한 FA 제도, 어떻게 변화해왔나

프리에이전트(FA) 제도는 1999년 KBO 리그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리그 전체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고, 여러 차례 변화의 과정도 거쳤다. 제도 도입 초창기에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이적'과 '대박'의 길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화제였다. 투수 송진우가 1999년 11월 원 소속팀 한화와 3년 총액 7억원에 사인하면서 역대 1호 FA 계약 선수로 기록됐는데, 당시 한화와 송진우 사이의 협상 과정과 내용이 매일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을 정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 소속구단 해태와 협상이 결렬된 언더핸드 투수 이강철이 3년 총액 8억원을 받기로 하고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다시 한 번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강철은 역대 1호 FA 이적 선수로 기록됐다. 도입 첫 해인 1999년 FA를 신청하고 계약한 선수는 총 5명. 그들의 몸값 총액은 24억5000만원이었다. 야구 관계자들은 '천문학적 금액'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렇게 돈을 쓰다가는 프로야구가 다 망한다"고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1년 뒤 홈런 타자 김기태가 쌍방울에서 삼성으로 옮기면서 4년 18억원을 받자 걱정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리그는 망하는 일 없이 무사히 운영됐고, 선수들의 몸값은 오히려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점점 더 치솟았다. KBO와 구단들은 결국 2009년부터 FA 선수들의 다년 계약과 계약금 지급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4년 계약을 한 선수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을 때의 손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이었다. 여기에 'FA가 타 구단으로 이적할 때 전년도 연봉의 50%를 초과해 받을 수 없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그 시기에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했다.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구단과 선수가 찾아낸 타협안이 바로 '이면 계약'이라는 꼼수였다. 실제로는 계약금이 포함된 4년짜리 계약을 해놓고 공식적으로는 연봉만 받는 단년 계약으로 발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른 구단의 이면 계약을 비난하던 팀들도 정작 자신들이 급하면 FA 선수에게 서로 다른 내용이 적힌 두 장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다년 계약 금지 조항이 FA 선수들의 몸값을 낮추기는커녕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결국 이 규정은 2년 만에 사라졌다. 2011년에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부터 다시 다년 계약과 계약금 지급이 허용됐다. 그러나 이미 구단과 선수들은 이면 계약에 대한 죄책감을 없앤 뒤였다. 이후에도 꾸준히 발표 금액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의 이면 계약서에 사인한 선수들이 속속 나왔다. '공식적으로' FA 100억 시대를 연 선수는 삼성에서 KIA로 간 외야수 최형우로 기록돼 있지만, 그 벽이 실은 이미 수 년 전에 깨졌다는 게 야구계 정설이다. 2016년엔 꾸준히 유지돼 오던 원 소속구단 우선 협상기간도 폐지됐다. 이전까지는 FA 시장이 열린 첫날부터 일주일간 원 소속구단과 계약을 우선 논의하고, 이때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다시 일주일 동안 원 소속구단을 제외한 다른 팀들과 협상할 수 있었다. 이 기간이 모두 지난 뒤에야 비로소 원 소속팀과 다른 구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팀과 협상할 수 있는 진짜 FA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우선협상기한 역시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던 상황이다. 탬퍼링(사전 접촉)은 야구 규약상 명백하게 금지돼 있지만, 매년 시즌이 끝나갈 때쯤엔 "어느 선수가 어느 구단과 이미 합의까지 마쳤다"는 소문이 떠돌곤 했다.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현실이 된 얘기도 꽤 많았다. 구단들도 탬퍼링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진 지 오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제시하지 않더라도, 시즌 중반 대어급 FA들에게 슬쩍 다가가 "지금 소속팀이 얼마를 부르든 무조건 그것보다는 많이 주겠다"는 얘기를 툭툭 던지는 구단 관계자들이 많았다. 상황이 이러니 원 소속구단과의 협상 때 아예 선수가 구단의 제시액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일도 종종 생겼다. 협상 관계자들이 "협상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아예 원 소속구단의 제시 조건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빨리 일주일이 지나 다른 팀과 계약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고 푸념하기 일쑤였다. 유명무실한 제도는 폐지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일부 구단은 "우선협상기한이 그나마 탬퍼링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반대했지만, 급변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또 2018시즌이 끝난 직후에는 선수들의 몸값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는 구단들이 'FA 4년 총액 80억원 상한제' 도입을 추진했다가 선수협의 강경한 반대와 부정적인 여론에 부딪혀 무산되는 일도 생겼다. FA 등급제 도입은 이후 FA 제도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이자 선수들의 오랜 숙원을 풀 수 있는 움직임이다. 특급 FA들의 몸값이 높아질수록 준척급 FA나 베테랑 FA들의 입지는 축소되는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A급 FA가 아닌 선수들은 이전보다 자유롭게 다른 팀에서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구단들은 그리 비싸지 않은 몸값의 FA 선수들을 보상선수 출혈 부담 없이 영입할 수 있게 됐다. 배영은 기자 2020.01.2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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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식 ‘17억원’에 롯데와 도장…롯데, 내부 단속 성공

강영식(32)이 원소속구단인 롯데와 도장을 찍었다.롯데는 우선협상기간 마지막 날인 16일 'FA 강영식과 계약기간 4년, 총액 17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금은 4억 원이고, 연봉 3억 원이다. 옵션 1억 원이 포함됐다. 지난 13일 올 F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포수 강민호(28)와의 계약에 성공한 롯데는 강영식과 계약하면서 팀 내 FA 선수 두 명을 모두 잡게됐다. 2000년 해태에서 프로에 데뷔한 강영식은 2001~2006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뛰었따. 2006년 11월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했다. 통한 14시즌동안 620경기에 나와 579⅓이닝을 던지며 28승23패91홀드 9세이브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했다. 강영식은 "사인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준 구단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구단이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 많은 경기에 출전해 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주희 기자 2013.11.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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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NC, 명문 구단으로 크는데 일조하겠다”

이호준(36)이 가족들에게 물었다. "전학도 가야하고, 당신(아내)도 낯선 곳으로 가야하는데 괜찮겠어?" 가족의 뜻은 확고했다. "아빠가 야구를 잘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요." 이호준이 '젊은 NC'의 중심에 선다. NC는 17일 이호준과 3년 최대 20억원에 FA(프리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다. 16일까지 원소속구단과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이호준은 17일 NC와 첫 만남에서 계약서에 사인했다. SK는 2년 최대 12억원을 제시했다. 계약기간부터 이견이 있었다. NC는 더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호준의 마음을 얻었다. 이호준은 "첫 만남에서 '우리는 이호준이 꼭 필요하다. 이호준이라는 선수를 높게 평가한다. 꼭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는 세 마디를 먼저 하시더라. '내가 원하는 팀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 창단한 NC는 2013년부터 1군에서 뛴다. 사실상 신생팀. 이호준은 2000년 SK의 창단멤버로 등장했다. 1994년 해태(KIA 전신)에 입단해 6년을 뛰었지만 SK 창단멤버로 영입돼 12년을 인천에서 보냈다. 인천은 그의 야구인생을 새로 시작한 제2의 고향이다. 한국 프로야구 9번째 심장, NC에서 이호준은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한다. 창원은 그에게 세 번째 고향이 됐다. -12년동안 뛴 SK를 떠나 NC와 계약했다.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NC가 나를 더 필요로 했다. 내 결정에 후회는 없다. 17일 NC와 처음 만났는데 '우리는 이호준이 꼭 필요하다. 이호준이라는 선수를 높게 평가한다. 꼭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는 세 마디를 먼저 하시더라. 내가 그토록 원하던 말이었다. 이런 팀에서 뛰고 싶었다. 돈을 떠나서 내가 필요한 곳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NC는 신생구단이다. 베테랑 타자로서 할 일이 많을텐데."일단 FA로 영입해 준 NC를 위해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프로구단에서는 고참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팀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솔선수범하겠다. 아무래도 NC에는 젊은 선수들이 많으니, 프로에서 오래 뛰어온 내가 신경쓸 부분이 많을 것이다."-2000년 SK도 신생팀이었다. "SK의 창단멤버였다. SK가 지금의 명문팀이 되는 과정을 통해 나도 많이 배웠다. 좋은 선배님들을 만났고, 야구와 경기 외적인 부분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 NC가 명문 구단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가족들도 정든 인천을 떠나는데."오늘 가족들에게 '내가 NC로 가면 전학도 가야하고, 아내도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괜찮겠나'라고 물었다. 아이들이 '아빠가 야구 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더라. 애들이 이렇게 컸다. 아내도 내 결정을 존중해줬다. 더 좋은 남편, 아버지가 되고 싶다."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 2012.11.1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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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NC에서 ‘이호준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호준(36)이 가족들에게 물었다. "전학도 가야하고, 당신(아내)도 낯선 곳으로 가야하는데 괜찮겠어?" 가족의 뜻은 확고했다. "아빠가 야구를 잘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요." 이호준이 '젊은 NC'의 중심에 선다. NC는 17일 이호준과 3년 최대 20억원에 FA(프리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다. 16일까지 원소속구단과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이호준은 17일 NC와 첫 만남에서 계약서에 사인했다. SK는 2년 최대 12억원을 제시했다. 계약기간부터 이견이 있었다. NC는 더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호준의 마음을 얻었다. 이호준은 "첫 만남에서 '우리는 이호준이 꼭 필요하다. 이호준이라는 선수를 높게 평가한다. 꼭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는 세 마디를 먼저 하시더라. '내가 원하는 팀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 창단한 NC는 2013년부터 1군에서 뛴다. 사실상 신생팀. 이호준은 2000년 SK의 창단멤버로 등장했다. 1994년 해태(KIA 전신)에 입단해 6년을 뛰었지만 SK 창단멤버로 영입돼 12년을 인천에서 보냈다. 인천은 그의 야구인생을 새로 시작한 제2의 고향이다. 한국 프로야구 9번째 심장, NC에서 이호준은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한다. 창원은 그에게 세 번째 고향이 됐다. -12년동안 뛴 SK를 떠나 NC와 계약했다. "정든 팀을 떠난다.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 아쉬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NC가 나를 더 필요로 했다. 내 결정에 후회는 없다. 오늘(17일) NC와 처음 만났는데 ''우리는 이호준이 꼭 필요하다. 이호준이라는 선수를 높게 평가한다. 꼭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는 세 마디를 먼저 하시더라. 내가 그토록 원하던 말이었다. 이런 팀에서 뛰고 싶었다. 돈을 떠나서 내가 필요한 곳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NC는 신생구단이다. 베테랑 타자로서 할 일이 많을텐데."그렇다. 할 일이 무척 많을 것 같다. 일단 FA로 영입해 준 NC를 위해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프로구단에서는 고참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팀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솔선수범하겠다. 아무래도 NC에는 젊은 선수들이 많으니, 프로에서 오래 뛰어온 내가 신경쓸 부분이 많을 것이다."-2000년 SK도 신생팀이었다. "SK의 창단멤버였다. SK가 지금의 명문팀이 되는 과정을 통해 나도 많이 배웠다. 좋은 선배님들을 만났고, 야구와 경기 외적인 부분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 NC가 명문 구단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김경문 감독이 이호준 영입을 원했다고 하더라."무척 감사드린다. 김경문 감독님은 한국에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한 명감독님 아니신가. 감독님께서 원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따라가겠다."-SK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FA 결과가 발표된 후 SK 후배들과 전화통화를 했다. SK 후배들 덕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후배들이 나를 잘 따라줬고, 나도 후배들에게 배웠다. 정말 즐겁게 야구했다. 우승의 기쁨도 누렸다. 다른 유니폼을 입었지만 우린 다같은 야구선수 아닌가. 경기장에서, 사석에서 만나서 더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다. 후배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가족들도 정든 인천을 떠나는데."오늘 가족들에게 '내가 NC로 가면 전학도 가야하고, 아내도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괜찮겠나'라고 물었다. 아이들이 '아빠가 야구 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더라. 애들이 이렇게 컸다. 아내도 내 결정을 존중해줬다. 더 좋은 남편, 아버지가 되고 싶다."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 2012.11.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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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FA 보상선수 ‘순간의 선택이 좌우’

'순간의 선택이 4년을 좌우한다.'KIA가 FA(자유계약선수) 이범호를 영입하면서 원소속구단 한화가 선택하게 될 보상선수의 범위를 두고 말이 많다. 우선 올해 신인선수를 보상선수로 데려갈 수 있는 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뜨겁고, 설사 신인선수는 자동보호가 된다고 하더라도 KIA에서는 보호선수로 묶을 18명의 선수를 선별하는데 여간 고심이 아니다. 그만큼 보상선수 선택이 팀 간 민감한 문제다.역대 최고 보상선수는 손지환과 이원석 FA 선수는 영입할 지 안 할지만 결정하면 되지만 그에 따른 보상선수는 선택의 몫이기 때문이다. 보상선수를 잘 골라서 FA 선수 출혈을 메우고도 남는 재미를 본 팀이 있는가하면, 잘못 골라서 보상효과를 전혀 보지 못한 사례도 있다. 역대 FA 보상선수로 팀을 옮긴 선수는 15명이 있었다. FA제도 적용 첫해인 2000년 이강철의 보상선수로 해태로 옮긴 박충식과 김동수의 보상선수로 LG에 간 김상엽이 첫 케이스. 2009년 초 롯데의 홍성흔 영입으로 두산에 보내진 이원석이 가장 최근 보상선수다.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손지환(33)과 문동환(39)으로 꼽힌다. 우선 손지환은 2004년 FA로 LG에 입단한 진필중의 보상선수로 KIA의 간택을 받았다. 당시 LG에서 8년간 백업내야수를 탈피하지 못했던 손지환은 이적 첫 해 KIA 주전 내야수를 꿰차 114경기나 나서며 타율 2할7푼1리의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8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될 때까지 4년간 2할6푼이 넘는 평균타율에 34홈런 140타점을 올리며 KIA의 주축선수로 활약했다. 반면 4년간 30억원에 손지환까지 대가로 얹어 LG에 입단한 진필중은 3년간 3승14패 14세이브에 그쳐 손지환만도 못했다.현역 선수 중 가장 성공사례로 꼽히는 보상선수는 이원석(25)이다. 2009년 롯데로 간 홍성흔의 보상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이원석은 내야수 유망주가 넘치는 두산에서 첫해부터 주전을 꿰찼다. 2년간 2할8푼이 넘는 타율에 홈런도 매년 10개 가까이 쳤다. 이원석의 나이는 이제 불과 25세. 앞으로 활약까지 기대한다면 두산으로서는 홍성흔의 공백이 전혀 아깝지 않다.노장이라고 무시하지 마KIA의 손지환, 두산의 이원석 선택은 많지 않은 나이(26세)와 잠재력을 잘 살핀 결과였다. KIA가 신인선수는 자동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존의 FA를 영입하는 팀들이 보호선수로 어린 선수들을 최대한 많이 묶으려는 것도 이때문이다.역대 가장 어린 보상선수는 2004년 이상목의 보상으로 롯데에서 한화로 간 신종길로 당시 21세였다. 같은 해 현대로 이적한 노병오가 22세였고 2009년 이원석 등 23세도 3명이나 된다.하지만 30대의 베테랑 선수가 보상선수로 선택된 사례도 많고 성공한 경우 역시 제법 된다. 대표적인 예가 문동환이다. 2004년 당시 32살이었던 문동환은 정수근의 보상선수로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했다. 그와 동시에 채상병과 트레이드 돼 한화로 갔다. 내리막길을 걷던 문동환은 첫해에는 4승에 그쳤지만 이듬해 10승과 그 다음에 16승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한화는 30대 중반의 문동환을 부활시켜 4년간 35승을 챙기는 등 영양가 만점으로 써 먹었다. 2009년 33살의 나이에 이진영의 보상으로 SK 선수가 된 이승호(37번)도 지난해 2승을 올리며 부활했고 2000년 박충식도 30살의 나이에 2년간 반짝 활약을 했다. 역대 최고령 보상선수는 2003년 박경완과 바뀐 조규제로 당시 36세였다.한편 역대 보상선수 중 가장 실패한 사례는 두산이 2007년 LG로 간 박명환의 보상으로 선택했던 신재웅으로 어깨 부상 때문에 이적 후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그해 말 방출됐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 2011.01.3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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